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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박정준

Created at
2020/03/14
Updated at
20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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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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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에서 무려 12년을 근속해서 아마존 전체에서 근속기간 상위 5% 직원이며 가장 오래 일한 한인이시라는 박정준 씨가 아마존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제프 베조스의 주주 서한을 분석해서 아마존의 성장원칙을 분석한 책 ⟨베조스 레터⟩에 이어서 내부자의 관점에서 풀어 놓는 아마존 이야기가 궁금해 읽게 되었는데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무조건 아마존이 최고야라는 식으로 아마존 찬양을 하거나, 그런 아마존에서 일한 자신은 얼마나 대단한가 같은 자랑을 늘어놓는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그야말로 쟁쟁한 인재들이 모여있는 치열한 일터 아마존에서 동양인 직원으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버텨냈는지, 무얼 배웠고 어떤 과정을 거쳐 독립하게 되었고 자신에게 아마존이란 회사는 어떤 의미인지 진솔하고 담백하게 남긴 기록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아주 좋은 간접 경험. 아마존 다니는 아는 선배가 정말 정성스럽게 몇시간이고 인터뷰해준 느낌이랄까.
없음

나의 형광펜

프롤로그

입사 6년 차에 둘째 출산을 앞두고 이런 고민이 심화되면서 삶이라는 조금 더 크고 긴 관점에서 나의 직장생활을 바라보았다. 아마존 안의 나로부터 세상 속의 나로 시선을 줌아웃하자 많은 것들이 선명해졌다. ‘이곳은 나의 목표가 아닌 과정이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을 토대로 궁극적으로 ‘지금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을 좇아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는 내가 오늘도 매일 생각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한 이정표가 되었다.
아마존에서의 시간을 도제의 시간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안정을 담보로 삶을 저당 잡히는 농노와 마스터로의 과정에 있는 도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평생 있어야 한다면 괴로운 곳이지만 과정으로 보기 시작하니 이보다 감사한 곳일 수 없었다. 과분한 월급뿐 아니라 눈을 들어 살펴보니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운 좋게도 나의 마스터인 아마존은 그 기간 동안 4차산업을 선도하는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되어 있었다. 돈을 받으며 가장 혁신적인 회사에서 그 성장과 성공의 원리를 보고 배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수지맞는 장사가 없었다.

1. 여정의 시작

아마존에 들어가다
‘세상에서 가장 고객 중심인 회사 (Earth’s Most Customer-Centric Company)’
원칙은 믿고 공유되는 만큼의 힘을 가진다는 것이 내가 아마존에서 배운 가장 큰 가르침 중 하나다.
아마존이 이토록 혁신을 거듭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가 현재 인터넷 시대의 첫날에 살고 있다는 ‘데이원Day 1’ 정신이 있다.
특히 이러한 마음을 들게 한 것은 사원에게 주어지는 아마존의 RSU(Restricted Stock Unit) 주식 때문이었다. RSU 주식이 일반 주식과 다른 점은 한 번에 받는 것이 아니라 4년에 걸쳐 받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00주의 RSU를 받으면 첫해에 10, 두 번째 해에 20, 세 번째 해에 30, 네 번째 해에 40과 같이 뒤로 갈수록 많이 받게 된다. 이는 사원들이 아마존에 더 머물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이처럼 아마존은 교육이나 연수를 통해 주인의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주인이 된 증표인 회사의 주식을 준다.
뭐 이런 곳이 다 있지?
내가 지금까지 살던 세계와 이곳 아마존의 차이를 한마디로 설명해야 한다면 그것은 ‘말과 행동의 거리’다. 한마디로 아마존은 말과 행동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다. 군더더기 없이 명료한 곳, 능력과 청렴성이 우선인 곳, 주체적으로 일하는 곳, 그리고 원칙이 정말로 지켜지는 곳. 이것이 내가 받은 아마존의 첫인상이다.

2. 아마존의 문화, 공간 그리고 사람들

곳곳에 묻어나는 창업주의 절약정신
회장이 “도어 데스크야말로 검소함의 상징이며, 아마존은 고객에게 중요한 곳에만 돈을 쓴다는 의미에서 도어 데스크는 매우 중요하다”라고 인터뷰에서 밝힐 만큼 아마존에게는 특별한 책상이다. 또한 틀에 박힌 사고에서 벗어나 혁신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은 창업주의 정신을 기리는 상징이기도 하며, 모든 사원이 지위의 높고 낮음 없이 같은 책상을 사용함으로써 사원들 간의 계급이나 거리를 없애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혜택이 워낙 없어서 사원들의 원성이 있기도 하지만 회장이 하는 이야기는 언제나 동일하다. 거품과 낭비를 줄이고 그 모든 자원을 고객을 위해 지속적으로 사용하면 자연스럽게 회사는 성장할 것이고 그 열매는 주주인 사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아마존이라는 회사는 눈부시게 성장했고 주가도 수십 배 올랐으니 회장의 철학이 변했을 리 없다. 게다가 이러한 절약정신을 통해 단순히 비용을 절감하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으로 고객을 위한 일이 아니면 불필요한 돈을 쓰지 않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생겨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누리고 있다.
팝콘을 잘못 튀기면 일어나는 일
“실패와 혁신은 분리할 수 없는 쌍둥이다(Failure and innovation are inseparable twins)”
사커맘과 워커홀릭
아마존은 단순히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기보다는 명료하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마존은 최고의 인재들을 뽑고 경쟁시키며, 또 그들의 능력과 노력만큼의 실질적 보상을 해주는 곳이다. 아마존의 모든 사원은 다소 냉혹한 이 정글에서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자질과 노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도 더 눈에 띄는 이에게는 그에 걸맞은 보상이 돌아간다. 그렇기에 사커맘도 워커홀릭도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며 스스로 만족스러운 만큼의 기여를 할 수 있다. 사커맘의 경우 ‘워라밸work-life balance’, 즉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시해서 5년 동안 승진이 되지 않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반면 워커홀릭은 노력과 능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고속 승진을 거듭하고 그에 걸맞은 연봉과 보너스를 받는다. 다소 극단적인 두 부류가 아마존에서 공존하며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바보 같은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가 《1등의 습관(Smarter Faster Better)》에서 이야기한 대로 구글의 데이터사이언스팀이 밝혀낸 생산성 높은 팀의 비밀은 다름 아닌 마음 놓고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이가 어린 신입사원도 마음껏 자기 의견을 낼 수 있는 조직은 그렇지 못한 조직에 비해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창조적인 솔루션을 가져온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누군가가 “바보 같은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라고 시작한 질문을 하고 나면 많은 경우 “그건 사실 굉장히 좋은 질문이네요(That’s actually a very good question)”라는 말과 함께 대답을 시작한다. 아마존은 잘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고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몰라서 질문한 사람은 많은 경우 감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용기 덕분에 모르면서도 가만히 있던 사람들도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 구성원 모두의 이해가 높아지고 서로 간의 오해는 줄어든다. 단순히 서로를 아이디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두려움 없이 낼 수 있는 문화가 수평문화가 아닐까?
아마존에서 만난 두 명의 천재
아마존에서는 ‘기술적 채무(technical dept)’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는 당장의 쉬운 방식으로 대충 일을 처리하면 나중에 시간이 가면서 이자가 붙어 훨씬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은유적 표현이다. 사실 이것은 기술적 영역뿐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우주의 원리다.
한국 기업들 또한 주먹구구로 빠르게 일을 처리하여 기술적 빚더미에 앉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보고 듣는다. 반면 아마존의 방식은 애초에 시간을 들여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채무를 최소화하여 시간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는 로니가 일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아마존과 로니의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시간을 나의 편으로 만들자’라는 원칙은 내 삶의 모토 중 하나가 되었다.

3. 아마존의 고객 중심주의는 클리셰가 아니다

전 세계 6억 가지 상품의 온라인 주소가 되다
제품권위(item authority)
아마존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거꾸로 소비자로부터 시작하라(Start with the customers and work backward)’는 말이다. 손익이나 기술적 한계를 고려하기에 앞서 소비자가 무엇을 좋아할지, 어떤 결정이 더 소비자에게 도움을 줄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따라 회사가 할 일을 정하는 것이다.
나만을 위한 상품들이 진열되는 쇼윈도
아마존은 개별적 고객의 행동을 사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집합적 고객 정보를 추천을 위해 활용한다.
시간을 선물해주는 곳
로딩 시간을 단축하는 일은 더 빠르고 안정적인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것과 비견될 만큼 어렵고 기술적인 일이다. 소비자가 기다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아마존의 페이지는 수백 개의 컴포넌트(component)라고 불리는 구성 요소가 동시에 각각 다른 서버를 통해 로딩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다시 말해 검색창, 메뉴바, 추천제품, 광고 등 아마존 페이지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 요소들이 독립적이고 병렬적으로 로딩된다. 또한 모든 구성 요소들의 로딩 시간이 빠짐없이 감시되어 기준 시간보다 느리게 로딩이 될 경우 곧바로 담당 팀의 경보가 울린다.

4. 시간이라는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

아이가 체스 챔피언을 이기는 방법
아마존으로 이직해온 개발자들은 하나같이 서비스 지향 아키텍처와 아폴로로 대변되는 아마존의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을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다른 회사와 비교해서 아마존의 장점을 물을 때마다 듣는 답변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은 개발자들이 생산과 직결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아마존의 성장을 가져온다. 아마존은 이 같은 작업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담당 팀을 두어 오랜 시간 개발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해왔다. 그리고 마침내는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아마존 외에 누구라도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 서비스들을 아마존 웹서비스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백 배 넓은 땅에서 이틀 만에 배송하는 비결
미국에서 신속한 배송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물건을 효율적으로 보관·배송할 수 있는 다수의 물류센터다. 땅이 워낙 크다 보니 미리 상품들을 여러 곳에 나누어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배송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제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와 막대한 자원으로 새로운 회사가 아마존을 추격한다 해도 아마존의 위상이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이유 중에 가장 손꼽히는 것이 바로 아마존이 구축해놓은 어마어마한 물류센터 인프라다. 아마존은 2018년 5월 기준 700개가 넘는 현대화된 거대 물류창고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총면적은 강남구의 절반 정도가 되는 막대한 크기다. 물류센터 하나를 짓는 데 평균적으로 1억 달러가 소요되며 유지를 위해 850명가량의 직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후발 주자가 쫓아오기 힘든 거대한 장벽이 되고 있다.
아마존 풀필먼트 센터는 단순히 면적만 큰 것이 아니라 굉장히 똑똑하게 운영된다. 굴지의 소프트웨어 기업답게 물류센터 부지 선정에서부터 공급망 관리, 재고 분산, 주문 배송, 반품 처리에 이르기까지의 가능한 모든 부분에 데이터와 최신 기술을 적극 활용하여 효율적이고 자동화된 풀필먼트 센터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초당 500개가 넘는 주문과 배송을 소화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가능하게 했다.

5. 본질을 보는 눈과 머뭇거리지 않는 발

혁신에는 마지막 금덩이가 없다
아직도 아마존은 우리 인류가 인터넷 시대의 첫날에 살고 있다고 믿으며 모든 사원들에게 이를 의미하는 데이원Day 1 정신을 각인시킨다. 나는 이 데이원 정신이야말로 아마존이 이 시대에 존재하는 이유이자 수많은 새로운 혁신 사업들을 선도하며 성장하게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아마존을 온라인 서점이나 커다란 이커머스 사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베조스 회장이 강연을 한 2003년 당시의 아마존은 분명 온라인 서점이자 성장하는 이커머스 사이트였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아마존은 인터넷 사업의 첨단 분야인 클라우드 컴퓨팅과 IOT(Internet of Things) 산업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어떻게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과는 언뜻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런 혁신 사업들의 프런티어가 된 것인지는 오로지 데이원 정신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단지 이윤을 좇는 기업들과는 애초부터 마인드가 달랐던 것이다.

6. 극강 효율 아마존식 솔루션

아마존은 하루에 몇 장의 이력서를 받을까?
아마존이 채용 과정에서 보는 것은 ‘정답’보다도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골방에서 골똘히 생각하여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면서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단계적이고 창의적으로 접근하는 인재를 선호하는 것이다.
신입사원에게 주어지는 네 가지 생존 도구
초반에 조너선이 이런저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면 나는 대략적인 설명 후에 주로 관련한 아마존 사내 위키 페이지 링크를 보내주었다. 스스로 정보를 검색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다. 아마존의 사내 위키는 사원 누구나 검색은 물론이고 새 페이지를 만들고 수정할 수 있는 지식 공유 플랫폼이다. 물론 외부인은 접근할 수 없으며 비밀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관계자 외의 접근이 제한된다.
같은 정보가 단순히 누군가의 컴퓨터 파일에 들어 있는 것과 사내 위키에 있는 것은 최신 정보의 공유 차원에서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를 가진다. 잘못되거나 오래된 정보가 공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아마존은 위키 페이지를 제때 업데이트하는 것을 업무의 일부로 여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처럼 위키를 통해 관리된 양질의 정보는 신입사원에게는 물론 기존 사원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아마존의 큰 경쟁력이 되었다.
아마존의 멘토링 시스템은 신입사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마존 사원들은 사내 멘토 사이트에서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멘토를 검색해 선택할 수 있다. 멘토 사이트에는 멘토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전문 분야와 함께 등재되어 있다. 이 리스트에서 자신이 배우려는 기술을 가르쳐줄 멘토를 골라서 연락하면 매주 한 차례씩 3개월 정도의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 컴퓨터 언어나 빅데이터 분석 같은 기술적인 것은 물론 팀 관리나 연설 등 다양한 분야의 과외를 받을 수 있다. 사원들 간의 자발적인 재능기부의 장인 셈이다.
스프링 프레임워크와 관련하여 멘토링을 받은 것은 회사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새로 들어간 아마존 로컬 팀의 웹사이트는 스프링 프레임워크 위에서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 프레임워크가 굉장히 방대했다. 책을 하나 사긴 했는데 워낙 두꺼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때 이미 아마존 내에서 같은 프레임워크 위에 비슷한 사이트를 만들어본 멘토에게 일주일에 한 시간 동안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는 것은 돈을 주고도 받기 힘든 과외였다. 다만 아마존의 멘토링에서는 멘토가 어젠다를 가지고 진행하지 않기 때문에 멘티가 스스로 도움을 받고 싶은 내용과 질문을 잘 정리해서 얻어가야 한다. 바닷물에 들어가도 작은 바가지를 들고 가면 딱 그만큼만 물을 떠오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멘토링 과정에서도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인사고과 서바이벌
원칙을 가진 회사들은 많지만 그 원칙을 사원 모두가 함께 믿고 공유하는 회사는 드물다.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은 회사 내에서 내려지는 결정들에 대해 마치 십계명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
난 아마존의 고과 과정에 딱히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위직 승진에 있어서는 다른 언어와 문화에서 자란 이들이 아마존이 요구하는 ‘큰 영향력’과 같은 조건들을 비교적 맞추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또한 까다로운 승진 심사에서는 동료가 아닌 윗사람들의 의견이 대부분 반영되다 보니 어느 정도의 비위 맞추기와 정치력도 필요해진다. 그래서인지 아마존 위쪽 사다리 위에는 야망이 있는 백인 남성들이 많다. 이들이 근무 외 시간에도 함께 어울리며 쌓은 연대감이 회사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브로 문화bro culture’라고 부른다. 이는 아마존뿐 아니라 미국의 테크 기업에서 종종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그해에도 승진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연봉제와 동료평가 제도가 아마존의 수준과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마존의 동료평가 제도는 과도한 경쟁을 부추긴다는 점과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몇 차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아마존은 어떻게 일할까?
아마존에서는 상사가 업무를 지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스크럼(scrum)으로 대변되는 애자일 프로세스(agile process)를 통해 투명하게 매일 자신이 해야 하는 업무를 정하고 팀 차원의 생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애자일 프로세스란 기존 워터폴(waterfall) 방식의 하드웨어적 제품 개발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적 제품 개발에 특화된 빠르고 유연한 점진적 개발 프로세스의 총칭이며, 스크럼이나 칸반(kanban) 등은 널리 쓰이는 애자일 방식의 다양한 방법론이다. 새로운 휴대폰 개발이 끝나면 테스트를 시작하듯 커다란 단계별로 일을 진행하는 워터폴 방식과 달리 애자일 방식에서는 2주 정도의 짧은 주기로 계획, 개발, 테스트, 배포를 반복한다.
미국 회사에서는 특정 정보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집중되어 있는지를 측정하는 표현으로 버스 지수(bus factor) 또는 로또 지수(lottery factor)라는 말이 있다. 팀원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는 상황이 팀 전체 업무에 주는 영향의 크기를 설명하는 말
지수가 높다면 정보 공유가 잘 되어 있어서 예견치 못한 상황으로 많은 팀원이 팀을 갑자기 떠나도 문제없이 일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지수가 낮다면 전임 팀원 한 명이 팀을 떠나면 당장 큰일이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스크럼은 팀 차원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했는가에 중점을 두는 반면 누가 일을 많이 또는 적게 했는지는 드러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다만 누가 봐도 일을 잘하는 ‘록스타’는 곧 승진을 하게 된다). 설거지 표와 같이 누가 일을 잘하는지가 투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팀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사원들끼리 서로 경쟁하며 한계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된다.
사내 이직을 독려하는 회사
아마존에서 회사와 사원의 관계는 철저한 기브 앤드 테이크 관계다. 사원은 아마존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과 생산성을 제공하고, 아마존은 이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한다.

7. 정글에서 터득한 생존법

그림과 숫자는 만국 공통어다
한 장의 그림이 가져다준 효과는 매우 컸다.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 내 머릿속에도 관련 일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채워졌고 차후에 부족한 이해나 오해로 인한 문제가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동료들 또한 내가 만든 그림을 자기에게도 필요하니 꼭 하나 보내달라고 부탁하기 시작했다. 자칫 반복적으로 질문만 하는 무능한 동료에서 팀에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원어민처럼 쉽지 않아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나의 단점이었는데, 그해 동료평가에서는 수많은 동료들이 효율적 커뮤니케이션을 나의 장점으로 꼽아주었다. 그 후부터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물어볼 때는 무턱대고 묻지 않고 일단 내가 이해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그것이 맞는지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니시무라 가쓰미西村克己의 《그림으로 디자인하는 생각정리 업무기술》 같은 책과 마인드맵, UML(Universal Modeling Language, 통합 모델링 언어) 관련 책들도 참고하면서 점차 생각을 그림으로 정리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후로 내가 가진 노트에는 내가 잘 이해하지 못했던 주제나 영역에 관한 나만의 도해들이 한 장씩 채워졌다.
이러한 도해의 매력과 장점은 이후 내가 경영 분석가로 직종을 옮기는 데에도 한몫을 했다. 아마존의 경영 분석가는 글과 문서보다는 데이터와 차트를 다루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당시 속했던 아마존 로컬 팀이 수집하는 방대한 데이터의 광산에서 경영에 도움이 될 정보를 캐고 분석하고 시각화하여 전달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포스트잇 한 장의 마법
스크럼은 계획 단계와 실행 단계를 확실히 구분하고 각 개발자가 하루에 하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고, 이는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를 대폭 줄여주는 동시에 생산성도 향상시켰다.
미처 마치지 못한 업무들은 다음 날의 목록에 자연스럽게 오르게 되니 큰 문제는 아니지만 스크럼과 마찬가지로 왜 일들을 모두 처리하지 못했는지를 회고하고 반복적으로 개선하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적더라도 지킬 수 있는 양으로 하루의 업무를 맞추어 끝마치면 매일을 실패가 아닌 작은 성취의 연속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아침에 가장 먼저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할 일을 계획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스트레스는 줄어들고 생산성은 높아졌다. 이렇게 시작된 습관은 아마존을 떠난 지금까지도 매일 지속되고 있다.
베조스 회장으로부터 비롯되는 명확한 방향성과 다른 두 회사보다 톱다운 방식이 많이 적용된 경영 방식
결국 아마존은 페이스북과 구글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제치고 2019년 1월 8일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등극했다. 아마존의 각 팀은 베조스 회장의 강력한 비전과 리더십 아래 스크럼 프로세스를 통해 당장의 중요한 일들을 처리해 나간다.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다 함께 아마존이 그리는 큰 그림을 조금씩 완성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화기록방식 일처리
케리 글리슨(Kerry Gleeson)의 《왠지 일이 잘 풀리는 사람들의 습관》
니시무라 아키라(西村昇)의 《CEO의 다이어리엔 뭔가 비밀이 있다》
데이비드 앨런(David Allen)의 《쏟아지는 일 완벽하게 해내는 법(Getting Things Done)》
노란 고무 오리 모형에게 말을 하면서 버그를 고친다는 의미의 ‘러버 덕 디버깅(rubber duck debugging)’
이 대화기록방식의 일처리가 좋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 번에 하나씩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일이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사고의 흐름이 기록으로 남아서 미래에 비슷한 일을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15분짜리 집중력으로 살아남기
선수들은 짧은 경기를 위해 수년 동안 항상 수영을 하기 전에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몸이 습관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훈련했다. 그 결과 반복된 행동을 취할 때 몸이 집중할 수 있는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따라서 방식 그 자체보다도 자신에게 맞는 집중을 위한 의식이 습관화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
“제가 항상 반복해서 외우는 주문 중 하나는 ‘집중’과 ‘단순함’입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더 오래 많이 일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이미 도래한 디지털 노마드 시대는 더 짧은 시간 일하고 최대의 효과를 얻는 자의 것이다.
12년을 버티게 해준 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날 선 긴장이 끝나고 토요일이 되면 한국의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 특히 〈무한도전〉을 챙겨본 날이 많았다. 재미도 재미지만 ‘평균 이하의 사람들이 펼치는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을 보고 있으면 주중의 경쟁과 긴장에 지친 심신이 위로를 받는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똑똑하고 잘난 사람보다 어수룩하지만 순수하고 착한 바보를 훨씬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이 나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바보는 누구나 좋아한다는 생각과 회사는 평생 있어야 하는 곳이 아니라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은 강박과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고 역설적으로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멘탈이 무너지면 버티기 힘든 곳이 실전이고 회사다. 바보는 누구나 좋아한다는 생각과 회사에서의 시간이 종착역이 아닌 과정이라는 마음가짐, 그리고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은 회사와 관련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주고 좀 더 큰 관점에서 여유를 가지고 아마존에서의 나의 시간들을 바라보게 도와주었다.

8. 아마존의 가장 큰 가르침, 나로 서기

아마존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나는 내게 진정한 행복감을 주는 것은 성취가 아닌 질서, 곧 모든 것이 제 위치에서 제대로 일하는 상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좋았던 기분도 시끄러운 경적이나 흰옷에 묻은 김칫국으로 금세 깨지고 만다. 더러운 접시 위의 요리나 어지럽혀진 호텔 방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우리에게는 질서를 향한 코드가 심겨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 아마존, 그리고 미래
난 참으로 아마존에 많은 빚을 진 사람이다. 아마존에서 지금까지 수천 번 물품을 구매한 고객이자 15년째 유료회원이며, 아마존을 통해 사업을 하고 있는 판매자이면서 오랜 시간 다양한 역할로 일한 사원이기도 하다. 이런 아마존과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나에게 아마존은 ‘마스터(master)’다.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존의 성공과 성장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칙을 지키고, 보질을 보고, 머뭇거리지 않고 행동하며, 끊임없이 혁신하는 아마존의 모든 성장 원리들은 결과물이 아닌 과정으로밖에 볼 수 없는 가르침이었다.

에필로그

이 책은 아마존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하는 글이 아니다.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 이외에는 없다. 내가 아마존에서 배운 것은 다른 이들과의 경쟁이 아니라 각자의 특별함 위에 변하지 않는 성장의 원리를 적용하여 세상에 필요한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성공했고 어떤 것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당시에는 몰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둘을 비교하니 답이 명확히 보인다. 아마존이 실패한 모든 사업들은 '다른 이를 따라가는' 것들이었다. 반면 아마존이 자기가 가진 기반 위에서 다른 이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한 사업들은 모두 아마존뿐 아니라 나를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