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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엄태웅, 최윤섭, 권창현

Created at
2020/01/14
Updated at
202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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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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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데이터사이언스/인공지능 분야의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활동으로 유명하신 엄태웅(Terry Taewoong Um)님의 글을 통해 알게된 책으로, 엄태웅, 최윤섭, 권창현 세 분이 참여하신 동명의 블로그 대학원생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의 내용을 다듬어 책으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나는 경영학과 전공으로 학부를 졸업한 뒤 평범한 회사원으로 2년을 지내다가 경영학을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 과정에 들어갈 당시 꿈꿨던 것처럼 졸업 후에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떠나진 않았고, 대기업 내 경영경제연구소에서 RA로 근무했다. 그리고 어쩐지 약간 방향을 틀어 데이터사이언스를 공부해서 현재는 데이터 분석 쪽 일을 하고 있다.
데이터사이언스는 매우 흥미롭고도 도전적인 분야이고 지금까지 경험해온 바 적성에도 잘 맞아 나는 나의 전직에 꽤 만족한다. (물론 앞으로 갈 길이 멀고 더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상술한 내 커리어를 돌아보면 불필요한 detour를 많이 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래보다 한 다섯걸음 쯤?은 뒤쳐져 있다는 생각에 불안할 때도 많다. 하지만 맘 속 깊이에서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남이 보기엔 방황처럼 보일 수도 있는 대학원 과정이 데이터사이언스 분야로 오기 위한 밑받침이 되어줬다는 것을. (그렇다. 나 자신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대학원 경험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정리하고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Key Takeaway: 대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것
지식을 얻는 과학적 방법론
논리적인 사고 방식과 문제해결 능력
본인이 주도하는 삶
- 엄태웅님의 '취업이냐 진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리고 최윤섭 박사님의 '박사학위라는 것의 의미' 장이 기억에 남는다. - 과연 책 제목대로 내가 대학원생 때 이 책을 알았더라면 감사하게 생각했을 만 한 알찬 팁들이 많다. - 대학원 생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도 많다. 대학원생이 아니더라도 논문을 꾸준히 읽으면서 공부를 해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시간관리 방법이나 기본적인 업무 매너, 삶에 대한 태도 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제너럴한 팁들도 가득하다.
아쉬운 점 없음!

나의 형광펜

1부. 박사과정 대학원생의 이야기 - 엄태웅 박사과정생편 -

프롤로그: 거창한 이야기의 시작
나는 어른이 되기 위해, 독립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주체가 되기 위해 우리들이 얻어야 할 대학원 속에서의 배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인생을 헤쳐가며 거창한 질문의 무게와 한 번도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남들이 세워놓은 ‘통과의례’에만 허덕이다 끝나는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어떤 문제를 풀 것인가?’이고 ‘왜 풀어야 하는가?’이다.
1.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
대학원 과정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닌 철저히 자기와의 싸움이요, 넘치는 자유 혹은 부족한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자기관리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공부하는 능력’ 말고 진학을 고려할 때 가장 중요하게 점검해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적 호기심’과 이를 탐구하는 ‘끈기’이다. 만약 당신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고, 그 문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적 난이도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그것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차근차근 풀어가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당신은 대학원에 매우 적합한 사람이다.
3. 취업이냐 진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
이상적인 경우, 회사는 개인으로서는 이루지 못할 큰 꿈을 실현시켜 줄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줄 수 있다. 회사가 나를 착취하는 것이 아닌 내가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 회사의 자원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즐겁고 발전적인 회사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회사의 목표가 본인의 성장 방향과 일치하여 일이 곧 본인의 자아실현과 연결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동료들이 있고, 본인의 가치와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를 만나야 할 것이다. 첨언한다면 이렇게 좋은 곳에 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본인 역시 그들과 어울릴 만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하자.
대학원 생활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이점은 아마도 논문을 통해 지식을 얻는 습관과 과학적 방법론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
대학원 과정을 마칠 때쯤이면 학문적인 호기심이 생겼을 때 논문을 검색해보고 이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위키피디아를 검색하는 일이 많겠지만, 적어도 본인의 전문 분야에서만큼은 ‘마음만 먹으면 논문을 통해 최신 기술을 탐색할 수 있다’ 정도의 자신감은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대학원에서의 또 다른 배움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닌 ‘지식을 얻는 과학적 방법론’을 경험하는 것에 있다. 이제까지의 지식이 책이나 강의로부터의 일방적인 주입에 기초했다면, 대학원에서는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조사하고 탐구하여 새로운 방법에 대한 검증까지 마치는 일련의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매우 값진 경험이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읽고 써본 사람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수용이나 배격이 아닌 과학적 검증 체계를 통한 지식 습득 습관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대학원 생활에서 배울 점을 하나 더 꼽는다면 ‘본인이 주도하는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역시 개인 차가 있고 환경 차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회사보다 대학원이 조금 더 큰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시간관리부터 연구에 대한 실행까지 스스로 규율을 세우고 스스로 탐색해 나아가는 것이 대학원 생활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때론 나태함에 빠지기도 하고 때론 무너진 워크-라이프 밸런스에 일 중독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자율성을 주도해보는 경험 역시 대학원 생활에서 얻는 큰 배움 중 하나이다.
4. 전공을 바꾸 대학원에 가고 싶어요
우리의 인생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A와 B가 만나고 이를 C가 도와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려면 A, B, C 모두를 진지하게 내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지금 버리려고 하는 자신의 전공이 미래에 소중하게 쓰일 A, B, C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니 현재의 전공을 너무 쉽게 무시해버리거나 불성실한 태도로 낭비해버리지 말고 잘 갈무리해서 미래의 무기로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홀대하는 지금의 전공이 스티브 잡스의 ‘캘리그래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정 지식보다는 새로운 지식에 대한 빠른 학습 속도learning curve를 가진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6. 나의 유학 도전 성공 이야기
“학교 이름이 뭐가 중요해? 이름 없는 학교라도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면, 이름 있는 학교에서 하기 싫은 연구를 하는 것보다 100배 더 좋을 것 같아. 그게 하버드이든 MIT이든 말이야.”
8. 영어 못해도 영어 논문 잘 읽는 법
수식이 어려워 못 읽겠다는 분도 있는데, 수식은 문장으로는 명확히 이해되지 않을 때 혹은 그 논문을 직접 재현해야 할 때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그 수식의 의의와 역할 정도만 알아도 전체 논문을 이해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처음 연구 분야를 접하는 분들이라면 ‘review’ ‘overview’ ‘survey’ ‘tutorial’과 같은 검색어를 함께 넣어 검색해보면 좋은 리뷰 논문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 논문이란 특정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이제까지 제안되었던 관련 연구들을 검토하거나review, 훑어보거나overview, 조사하거나survey, 쉽게 설명하고 있는tutorial 논문들을 말한다.
논문을 고를 때는 출판 연도, 논문 인용 수, 그리고 저자를 확인해보면 좀 더 믿을 만한 논문을 골라 읽을 수 있다. 논문 인용수가 많더라도 너무 옛날 논문이라면 조금 더 최신의 논문부터 읽어보길 권한다. 논문을 읽다가 좀 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때 옛날 논문을 읽어도 늦지 않기 때문이다.
논문은 꼭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없다. 나 같은 경우엔 내가 초록을 통해 ‘다루는 문제와 이 논문의 기여’를 파악한 후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결론을 먼저 읽어본다. 결론은 초록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실험 과정, 결과, 의의가 좀 더 자세하게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논문 읽기를 어려워하는 분들에겐 수식도 영어 못지않은 큰 장벽일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수식의 역할이다. 수식이 무엇을 입력값으로 받아 무엇을 결과물로 내놓는지 보고,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즉 그 수식의 역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만약 그 논문이 본인에게 정말 중요한 논문이라면 관련 교과서들을 공부하며 수식까지 이해하는 것이 좋다. 대학원 공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수업에서 가르쳐주는 내용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논문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찾아서 하는 공부가 대학원 공부이다.
9. 영어 못해도 영어 논문 잘 쓰는 법
논문은 연구를 다 하고 쓰는 순차적 과정이 아닌, 쓰기와 연구가 오가는 상호 보완적 과정임을 인지하자.
초록은 문제 제기와 연구의 중요성에 조금 더 큰 방점을 두고 결론은 실험을 통해 얻은 지식과 의의에 대해 조금 더 큰 방점을 두고 풀어내는 것이 좋다.
우선 영어 공부를 할 때부터 동사와 전치사의 궁합collocation을 같이 알아두는 것이 전치사 실수를 줄이는 한 가지 방법
관사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용법 습득은 물론이고 상황에 따라 그것이 전체 카테고리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특정한 하나의 개체를 끄집어내 이야기하는 것인지 구분하며 사용할 필요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예문을 통해 감을 익혀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원어민에게 물어봐도 왜 ‘a, the’를 썼는지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10. 자기관리가 대학원 생활의 전부다
대학원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늘어난 자율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이다. 가방끈이 늘어나며 여러분이 얻어야 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자율을 관리하는 방법이다. 구체적으로는 목표를 위해 주어진 자원을 분배하고 시간을 관리하며 스스로 동기부여를 통해 목표를 이뤄가는 과정을 배운다.
대학원은 학생을 지식 주입의 대상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연구의 주체로 변화시켜주는 교육의 꽃이다.
연구의 주인은 지도 교수가 아니라 본인이다. 그리고 본인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제까지의 삶은 남이 내주는 문제를 푸는 데 허덕이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원 생활,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에선 스스로 의미 있는 질문을 하고 그것에 성실히 답해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까진 남이 내준 문제를 풀어 남이 채점해주는 삶을 살았겠지만, 앞으론 내가 낸 문제를 내가 풀어 내가 채점하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변화의 첫걸음이 바로 대학원 생활이다.
나 자신을 당근과 채찍으로 잘 다독이며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법
나는 무엇을 궁금해하는 사람인가? 무엇을 하면 내 삶이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그러한 목표를 위해 나의 시간은 어떻게 분배해야 할까?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을 이끄는 요인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이끄는 지혜들과 그 조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의 지혜를 통해 대학원 생활을 주도하고 대학원 생활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우도록 하자.
11. 대학원생이 갖추어야 할 의외의 덕목들 4가지
개인이 할 수 있는 브랜딩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전문성을 무기로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세상에 노출하고 논문, 블로그, 깃허브, 트위터 등을 통해 다른 연구자들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 전문가’로서의 개인 브랜드도 생길 것이며 본인 논문의 영향력도 덩달아 커질 것이다.*
박사과정은 곧 20대 중후반과 30대 초중반의 삶을 의미한다. 연구를 잘하려면 연구 외적인 부분에서의 인생의 과정들도 순탄하게 진행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순탄하게 연애하고 결혼을 하는 일일 것이다. 따라서 연구능력 못지않게 연인을 만나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미리 배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12. 내게 뒤처질 수 있는 행복을 허하라
“더 뛰어난 사람이란 건 존재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더 뛰어난 사람이 많다는 건 그냥 “이 세상에 사람 많아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다. 세상에 사람이 많기에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열등감과 오기가 자신을 이끌어줄 동력이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의 동력은 우리 자신을 사랑할 때 나오는 것이지 자신을 쓰레기로 매도한다고 초능력이 생기진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삶에서 속력보다 방향이 중요하단 건 너무나 잘 알려진 격언이다. 하지만 우리의 채찍질이 정말 ‘방향’을 위해 쓰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면 지금까진 대부분이 ‘속력’에 관계되어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속력’에 대한 채찍질이 과한 반면 ‘방향’에 대한 채찍질은 그만큼 적게 가하고 있다.
그저 최대한 즐기시라. 사람은 경주마가 아니다. 채찍을 맞아 수동적으로 달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우리는 채찍 맞는 말은 오래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열심히 쥐어짜내며 점프해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 풍경을 천천히 즐기면서 걸어야 더 높이 오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당신의 즐거움 안에서 찾아가시기 바란다. 너무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쥐어짜지 마시고, 너무 자신의 못남을 부각하며 채찍질하지 마시고, 그저 오늘을 즐기시고, 조금은 게으름을 허락해주시고, 주변 사람들과 행복을 만끽하시며 즐거운 여행처럼 하루를 사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즐거움을 내일의 발전과 자연스럽게 연결해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내 미래를 위한 지속 가능한 발전의 길이 아닐까 싶다. 너무 자책하지 마시라. 그대는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2부. 대학원을 졸업한 연구자의 이야기 - 최윤섭 박사편 -

에필로그: 안정적인 삶, 그런 거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한심하고 답답한 상태가 인생의 본성nature이고 기본 모드default mode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어쩌면 이런 지극히도 자연스러운 인생의 본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이룰 수 없는 환상만 좇다 보니 이리 불행한 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 인생에 영원한 안정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왜냐하면 불안정이 인생의 본성이고 기본 모드이기 때문이다.
안정은 환상이다. 불안정이 디폴트다. 술술 풀리는 인생은 환상이고, 뭐든 턱턱 막히는 인생이 디폴트다. 그러니 지금 삶이 불안정하다고, 지금 삶이 하나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너무 좌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탈출이 아니라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일이다. 행복한 삶은 안정된 삶,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삶이 아니라, 불행과 함께 공존할 줄 아는 삶이다. 그러한 삶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을 우리는 현명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1. 나는 과연 대학원에 가야 하는 걸까
당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생각해보자. 내가 이루고자 하는 직업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누구도 대신해줄 수는 없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도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대학원생은 사회 전반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매우 특수하고도 어정쩡한 역할을 하는 중간인과 같다. 학생도 아니고, 사회인도 아니며, 교수도 아니고, 정식 연구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대기업처럼 잘 만들어진 시스템 속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잘은 몰라도) 노동법에 의해서 보호받는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이 없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도 많으며, 역할 자체가 명확하지 않아서 어떤 역할이라도 필요하다면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지도 교수님이 실험이 잘 풀리지 않아서 좌절하고 있는 나를 위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실험은 원래 디폴트가 꽝(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이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연구라고 하는 것은 결코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연구 과정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항상 더 많은 시간이 (보통 두 배 이상) 들어간다.
2. 박사학위라는 것의 의미
“윤섭, 네가 왜 박사를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 질문에 대해서 순간적으로 ‘내가 정말 박사를 받을 자격이 없어서 이런 질문을 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는 생각과 함께 ‘이건 박사학위라는 것의 가치에 대한 내 철학을 묻는 질문이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전문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급류를 거슬러 헤엄치는 것과 비슷하다. 열심히 발버둥을 치면 겨우 제자리에 머물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쉬려고 하면 금세 휩쓸려 떠내려가고 만다.
안타깝게도 논문은 우유와 같다.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다. 논문의 유통기한은 대개 5년 정도라서, 새로운 직장에 지원하거나 과제 지원서를 쓸 때는 ‘최근 5년 이내의 연구 업적’을 쓰게 된다
우리가 대학원에서 주제를 잡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는 내용은 교과서의 마지막 페이지 그 이후의 내용이다. 만약 내가 하는 연구가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학계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그 내용이 이제 교과서에 한두 줄로 실리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교과서라는 것도 그렇게 조금씩 쓰여온 것이었다. 태초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제 교과서 대신에 우리는 논문을 읽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내가 어떤 논문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려주지 않는다. 내 연구주제에 대한 지식의 체계는 이제 나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한다. 몇몇 논문은 다른 동료 혹은 교수님과 함께 읽고 토론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다수의 논문은 나 스스로 읽고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까지 우리가 초-중-고-대학교를 거치며 해왔던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박사과정 말년 차이던 어느 날,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연구하는 주제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생겼는데, 논문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누구도’라는 말은 우리 연구실이나 학교뿐만이 아니라, 현재 지구상에 살고 있는 전 인류의 누구도······라는 말이다. 이제 이 주제에 대해 내가 궁금한 것에 대한 해답은 교과서에도, 논문에도,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이제 적어도 지엽적인 나의 연구주제에 관해서는 인류가 가진 지식의 최전방에 도달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그렇게 인류가 가진 지식의 경계 너머에 있는 미지의 세계를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개척해나가는 것과 같다. 이제 내가 가진 질문에 대한 답은 다름 아닌 내가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내 질문에 대한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가설과 실험을 거쳐서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것이 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이 논문이 되고, 결국에는 인류의 새로운 지식이 될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그 경계를 넓혀간다는 것은 내게 아주 숭고한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인류 지식의 경계를 미증유의 세계로 넓혀가는 탐험가였다. 아마 평생을 다 바쳐도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 내가 넓혀갈 수 있는 영역이라는 것은 정말 미미한 것일 테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이자, 내 인생을 바칠만큼 가치있는 것이었다.
사실 우리가 박사학위를 받고, 평생 연구를 한다는 것은 결국 인류 전체의 지식을 미지의 세계로 조금씩 넓혀가는 일이다.
이런 의미를 알게 된다면 아래의 우스갯소리도 약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학사: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안다. 석사: 나는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박사: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특히 나는 박사학위가 가지는 큰 의미 중의 하나가 논리적인 사고 방식과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피땀을 흘려가면서 갈고닦은 그 논리적, 비판적 사고능력, 문제해결 능력,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3. 지도 교수를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주제 중의 하나인 인공지능과 같은 분야도 흔히 ‘인공지능 겨울AI winter’이라고 불리는 오랜 암흑기를 겪었다. 지금 인공지능 전문가로서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은 그 인공지능의 암흑기에도 묵묵하게 자신의 열정에 따라서 연구를 지속했던 사람들이다. 지금 인공지능 혹은 딥러닝 분야의 호황만을 보고 진학한 사람이라면, 10년 뒤에 이 분야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특정 분야에 몸담은 이후라면, 그 분야의 흥망성쇠에 대한 책임은 나에게도 일부분 생긴다는 것이다. 내가 세계적인 천재라서 그 분야를 혼자서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적어도 해당 분야의 발전에 대한 n분의 1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 대학원에서 혹은 졸업한 이후에 내가 좋은 연구를 하고, 의미 있는 성과를 낸다면 나라고 그 분야의 분위기를 바꾸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내가 바로 그 선도적인 연구자와 오피니언 리더가 될 수 있다. 뜻을 품은 연구자라면 이 정도의 자각과 자신감은 필요하다.
4. 대학원에 들어왔는데...... 이제 어떡하지?
특히 연구라고 하는 것은 (대부분의 다른 지적인 작업과 마찬가지로) 연속적인 시간의 확보가 아주 중요하다. 필자는 이에 관해 피터 드러커가 『프로페셔널의 조건』에서 했던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지식근로자에게는 30분씩 따로 6번 일하는 것은 소용없고, 3시간의 연속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8.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
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은 대개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친다. 내가 풀고자 하는 문제를 선정하고,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논리를 만들고, 논리를 위한 데이터와 근거를 만들어낸다.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가설을 검증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결론이나 발견을 하고, 혹은 새로운 가설을 세운다. 이 전체 과정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이끌어낸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깊은 사고와 통찰이 필요한 과정이다. 예를 들어서, 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 어떠한 논리와 방향으로 이 데이터를 분석해야 가장 효과적일까. 내가 얻은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표면적으로 쉽게 드러나는 것 이외에 내가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매우 중요한 그 어떤 것이 있지 않은가? 이 데이터에서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그다음에 내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동일한 데이터를 보고서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대가’ 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동일한 데이터와 현상을 보면서도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면 좋은 과학을 할 수 있다. 좋은 데이터를 얻고서도 충분한 의미부여와 (좋은 의미로) 포장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 연구 결과가 주목받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의 입장에서도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오늘부터 한 번에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금씩 실천해보자. 가장 좋은 출발점은 하루의 일과를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최소한 아침에 일어난 순간부터 샤워하고, 출근을 준비하고, 출근하는 동안만 계속 생각에 집중해보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는 순간, 내가 진행하는 연구의 전체 흐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래서 그 맥락 속에 오늘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가 이미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아무 생각 없이 관성으로 출근해서, 연구실 책상에 앉은 후에 ‘자, 이제부터 뭐 할지를 생각해볼까?’ 해서는 안 된다.
9. 절대로 혼자 일하지 마라
좋은 공동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사려 깊은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좋은 공동연구자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바로 나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동연구라는 것은 서로가 상대방이 가지지 않은 전문성이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혼자 하는 것보다 상대방과 함께하는 것에서 무엇인가 나은 부분이 있어야 한다. 즉 내가 전문성이나 특기를 가지고 연구팀에 기여할 수 있어야만 공동연구라는 것 자체가 성립한다.
통나무집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나는 맥키넌 박사님께 연구에 대한 여러 가지를 여쭤보았다. 특히 그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위대한 과학great science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었다. 박사님은 나의 우문에 현답을 주셨다. “위대한 문제great problem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본인은 자신의 흥미를 찾아서 그 위대한 문제를 찾으셨다고. 내가 “박사님은 지금도 연구가 즐거우세요?”라고 물었더니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도 매일 아침 연구실에 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다.”
필자는 공동연구에 있어서 한 가지 원칙을 강조하고 싶다. 바로 “상대에게 어떻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라”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그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타적인 자세가, 결국 나 자신에게도 더 큰 혜택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내가 이해하고 있는 ‘기브 앤 테이크’란 상대방에게 먼저, “혹시 뭐 필요한 것 없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줄게.” 하고 ‘먼저’ 다가가는 것을 말한다. 즉 향후에 테이크할 것을 바라지 않고, 우선적으로 먼저 기브하는 것이 프로페셔널의 ‘기브 앤 테이크’이다.
학회 등 외부 발표에서 뿐만이 아니라, 랩미팅 등 연구실 내부 발표 등 결과 공유를 하는 자리에서 공동연구자 등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은 분들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이러한 도움과 기여에 대한 감사를 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을 흔히 어크날리지먼트acknowledgement라고 한다.
에필로그: 좋은 연구자란 무엇인가(+ 몇 가지 사소한 팁)
기본 원칙은 이것이다. 랩미팅에 들어가기 전에 교수님이 내 발표 내용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라도 이미 파악하고 있는 상태여야 한다. 이 조건만 충족시키더라도 무작정 심하게 갈굼을 당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한 팁을 『맥킨지는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라는 책에서 처음 얻었다. 그 책에 보면 ‘임원들은 깜짝 쇼를 싫어한다’는 문구가 등장한다. 영화에 보면 회사에서 주인공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감동적인 한 번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참석한 임원들을 그 자리에서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절대 안 된다. 실제로 현실에서 일은 결코 이런 방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회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의 경우,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사전 조율을 통해서 관련 부서와 참석자들의 공감대를 미리 형성해놓는 것이 중요하다. 개별적으로 참석자에게 미리 세부 사항을 설명하고, 피드백을 받고, 부서 간 이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서, 사실상 이미 거의 결론이 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회의라는 형식을 거쳐서 의사결정을 받는 것이다. 만약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에 대해서 사전에 아무런 공감대도 없고, 피드백도 없고, 이견 조율도 없는 상태에서 그냥 무작정 회의 소집해서 발표자가 해당 이슈에 대해서 처음 설명한다면, 의도했던 반응을 이끌어내기란 극히 어렵다. 처음 듣는 것,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일단 거부반응을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3부. 대학원생을 지도하는 교수의 이야기 - 권창현 교수편 -

2. 내 연구하기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뭔가 질문이 들어오면 대체로 대답을 해준다. 학생의 질문에 답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박사 수준의 연구에서 교수의 대답이라는 건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교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4.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구인가, 아닌가?
조지 헤이즐리그George Hazelrigg의 「제안서 작성기술을 연마하라Honing Your Proposal Writing Skills」라는 글
6. 대학원생의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교수에게 질문하고 요구할 때 만족스러운 대답과 반응을 원한다면 교수가 대답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줄여줘야 한다.
8. 연구의 실제
이화여대 오욱환 교수님이 쓰신 글 「학문을 직업으로 삼으려는 젊은 학자들을 위하여」